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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메인 > 집으로 가자  
 
작성일 : 13-12-13 20:10
집으로 가자 (81) 정말 행복하세요?
 글쓴이 : 섬기미  
조회 : 491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책에선가 그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참 망연(茫然) 했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저나 제 주변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면,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그렇까요?
인간들은 수천 억 개의 은하계로부터 양자, 전자, 쿼크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가능한 양상을 자세히 검토할 만큼 관찰과 진보의 귀재들입니다.
그런데, 유독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데 있어서는
용의주도하다 할 만큼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에 절대 한가한 여백을 남겨주지 않습니다.
일, 컴퓨터,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 잡지, 신문, 스포츠, 음주, 도막, 마약, 파티 등으로
자신의 시간들을 부지런히 채웁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난 피조물의 삶을 시간을 내어 직시하고 성찰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허무한데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다는 사실에 직면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팡세의 파스칼은
"만일 우리의 상황이 진실로 행복하다면,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주의 돌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불행한 단 한 가지 원인은 방에 조용히 앉아 있는 법을 모르는데 있다." 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모두 불행합니다.
지난 주 설교 시간에 열심히 외쳤던 것처럼 인간의 행복(幸福), 복(福), 히브리어 '바라크' 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전제되지 않으면 절대 인간에게 감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한 생명력을 공급받아
이제 그 분을 자신의 왕으로 삼고 그 분의 통치에 순복하며 그 분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좇아
세상의 삶의 원리인, 남을 밟아 나의 유익을 챙기려는 힘의 원리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인, 나를 비우고 죽여 하나님과 이웃의 이익을 구하는 십자가의 원리로
이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낼 때에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지는 기쁨과 안식과 쳥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복 받은 삶, 복 받은 자, 행복한 인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힘의 원리에 머물고 있는 자들은
아무리 종교행위를 열심히 해도 그 안에 행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딴 짓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과거에 술을 참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술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함께 술을 마시며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 분위기가 좋았다고 해야 옳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예수를 잘 믿으시는 분이지만, 지금도 반주를 즐겨 하십니다.
저는 지금 목사이지만, 아버님이 식사 때 따라주시는 한 잔 술은 지금도 받아 마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버님의 유일한 낙이 아들들과 함께 목욕탕 가서 아들들의 등을 밀어주시는 것과
저녁 식사 때 아들 자식들과 반주를 한 잔씩 나누며
하루의 일들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아버님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한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아버님의 작은 행복 앞에
'아버지, 그리스도인은 술을 입에도 대면 안됩니다.' 라고 정색을 하여
노년의 그 작은 기쁨마저 빼앗을 만큼 저의 신앙이 그렇게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영원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직시하는 것이 두려워 습관적으로 술로 자신의 시간을 죽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저주 아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힘든 일이 있다고 해서 자신의 뇌를 술이나 마약이나 도박으로 절여서 감각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기를 겁내는 겁쟁이들의 대표적인 도피 행각일 뿐입니다.
스포츠나 여행, 식가, 영화관람, 음악감상 등의 것들도
자신의 삶을 성찰할 시간을 급히 메우는 도구로 쓰여 지고 있다면,
그것은 집착이요 종독이요 죄일 뿐인 것입니다.
 
'문화' 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신 역사 속에서 인간들이 그 역사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바라보며
'이것이 세상이구나' 하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만일, 인간들이 타락을 하지 않고 올바른 하늘의 세계관으로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킬더는 문화의 궁극적 목표는 '안식' 이라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들은 타락을 했고, 엉뚱한 힘의 원리라는 세계관을 갖게 되었고,
그 힘의 원리에 의해 문화를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문화는
자신의 영역을 금 긋는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창세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의식적으로 신의 존재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끊임없이 '신은 없다' 는 명제를 '참' 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이 노력을 합니다.
존 월리엄 드레이퍼늬 '종교와 과학의 갈등사' 나
앤드류 딕슨 화이트의 '과학과 기독교의 전쟁사'를 읽어보면,
인간들이 참으로 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그러한 열심이 17세기에는 천문학에 눈을 돌리게 했고,
18세기에는 뉴턴의 물리학에 눈을 돌리게 했으며, 19세기에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열광하게 했고,
20세기에는 프로이트에 젖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유물론과 무신론은 교회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삶에도 아주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자아, 억압, 콤플렉스, 투사, 신경증, 정신이상, 저항' 등의 단어들은
그 출처가 모두 프로이트 입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것이 성인이 되었을 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의 기초는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이 되어 있지요.
그래서, 내적치유다 뭐다 해서 그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치유하려 그 난리들을 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그러한 무신론자를 아신슈타인이나 양자 이론을 탄생시킨 플랑크와
동등한 대열에 올려놓고 신앙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게 '신에 대한 개념은 유아기적 소망의 투사' 라 명명한 프로이트류의 무신론과 불가지론과 회의론이
낳은 열매가 바로 타락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고 창조해 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는 인류의 문화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존재의 가치와 삶의 이유를 성찰할 시간을 빼앗는
악하디 악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도 열심히 살아내려 분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문화를 올바로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러한 세계관을 바꾸어 주는 의식화 작업의 현장이어야 합니다.
조금 표현이 과격한가요?
80년대 대한민국의 대학가에서 행해졌던 의식화 작업을 기억하십니까?
대학입시 전까지 가졌던 유아기적 세계관을 벗어버리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는
의식화 작업 말입니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의식화 작업이 효용이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식화 작업에 의해 자신의 몸을 민주화 투쟁에 과감히 던져 버리는
젊은 청년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니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교회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힘의 원리라는 세계관을 벗겨 버리고
십자가의 삶이라는 하늘나라의 세계관으로 안경을 바꿔 끼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 결과로 세상의 힘을 좇느라, 자신의 욕심을 좇느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직시하는 시간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었던 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참 행복을 추구하며
그러한 복된 삶을 향해 매일 매일 진일보 할 수 있게 이끌어야 하는 곳이 교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성도라는 사람들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인 다원(多元)
즉 다양성(多樣性) 과 상대주의(相對主義) 에 너무나 길들여져
신앙 생활도 그냥 여러 행복 중의 한 가지를 보태는 정도의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행복은 단 하나,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엉뚱한 것으로 시간들 보내지 마세요.
지금 바로 술잔을 엎으십시오. 지금 바로 카드를 던져 버리세요.
지금 여러분 눈 앞에 있는 인터넷의 가십(gossip) 기사와 케이블 TV 의 전원을 내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을 성찰해 보십시오.

여러분, 정말 행복하십니까?
매일 매일 갈고 닦고 사우나에 가서 땀 빼고 광내어 탱탱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게 된 것이
정말 행복하세요?
아무리 써도 잔고가 풍성한 여러분의 통장을 보며 안심하고 계십니까?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서 앞으로 그 녀석들의 덕을 볼 생각을 하니 감사의 눈물이 앞을 가리시나요?
그게 정말 영원한 행복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아십시오. 하나님을 배우세요.
더 열심히 공부합시다. 더 열심히 기도합시다. 더 열심히 고민하고 성찰합시다.

지금 브라질에서는 아홉 명의 청년들이 우리 서머나 교회 설교를
포르투칼어로 열심히 번역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말로 된 책보다 포르투칼어로 된 강해집이 더 먼저 나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그 청년들이 행복하게 자원하여 하고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 사람들은 즐길 줄 몰라서 그런 데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겠습니까?
복음이 뚫고 들어가 버린 이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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