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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메인 > 집으로 가자  
 
작성일 : 13-12-29 19:06
집으로 가자 (90) 공감 트랜드
 글쓴이 : 섬기미  
조회 : 1,144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남해의 작은 어촌 마을 미조리를 거쳐 통영의 동달리에 닿았다.
역시 이곳도 작은 어촌 마을이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제주, 남해, 통영에 여전히 눈발이 날린다.
춥다. 무릎이 시리다는 어르신들의 말이 이렇게 체감되기는 처음이다.
물론 그 시림과 추위로 인한 나의 시림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무릎과 허벅지가 얼얼할 만큼 바람이 매섭다.

그래도 배낭 하나 멘 나그네는 걷고 또 걷는다.
그래, 이게 바로 나그네지.
마을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을 하나도 알아챌 수 없는 철저한 이방인 ...

어촌 마을의 그 비릿한 내음은 참 정겹다. 대학 MT 때 이후로 처음 맡아보는 냄새.
미국의 바닷가 마을과 한국의 바닷과 마을은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수려한 한려수도의 풍광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런 마을에 버스가 들어오질 않는다.
지긋지긋한 가난 ... 말 안 해도 읽을 수 있다.
여전히 화장실은 밖에 덩그러니 흉물스럽게 놓여 있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악취가 난다.

여기 저기 대낮 막걸리 한 잔에 얼굴이 벌개진 늙은 아비들의 탄식 소리가 들리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낯선, 노구들의 마을이다.
도시로 간 자식들에게 보낼 미역을 말리는 어머니,
빨래 줄에 빨래 대신 널려 있는 오징어들 ...
억세게 바람 부는 황량한 당근 밭에서 고쟁이에 막장갑을 끼고
마지막 당근을 캐는 주름 굵은 검은 아낙들 ...
제 값을 놓친 배추가 출하를 포기당한 채 밭에서 썩어가고,
이미 갈아엎은 배추밭에는 한 해 동안의 가난한 농부들의 땀이 썪은 냄새로 조롱받고 있다.
초록색 철망으로 아름답게 감추어진, 저 위 성채 같은 골프장에선
연신 '굿 샷!' 이라는 쾌활한 캐디의 음성이 잔디의 농약과 함께 가난한 마을로 흘러내린다.

한참을 걷다가 마을 한쪽의 구멍가게를 발견했다. 물을 사기 위함이다.
가게도 변변히 없는 그런 마을.
겨우 멀리서 '담배' 라는 사인이 붙어 있는 허름한 집을 발견했다.
'담배' 라는 퍼런 사인은 '나 동네 슈퍼' 라는 문패 아니던가 ...
그런데, 물을 팔지 않는다.
유통기한이 이미 한참 지난 과자 부스러기들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소시지,
병문안 갈 때 필요한 백도 통조림 등등 역시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

난 비위가 상당히 약한 편이다.
오죽하면 군대에 입대해서 남의 집 김치를 처음 먹어 보았을까 ...
그런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생뚱한 제품이 입에 맞을 리 없다.
그 중 가장 익숙한 먹거리가 사발면이다. '농심 신라면'
가게를 지키시던 할머니에게 더운물을 얻어 사발면 그릇에 붓고 익기를 기다리는데,
할머니가 보시던 TV 에서 개그맨들의 입담이 펼쳐진다.

재미없다.
어느새 난 이 시대 문화에 공감코드를 상실해 버린 것 같다.
방청객들이 배를 쥐고 웃는다.
심지어 가게 집 할머니도 킥킥 웃으시는데, 난 하나도 웃기지가 않다.

가만 보면 지금 이 시대 문화의 트랜드는 공감 트랜드임이 분명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공감 트랜드가 작용한다.
'아 맞아, 나도 그런데 ...' 사람들은 그 시점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그건 아담들의 유전자 속에 이미 용해되어 있는 본질이다.
인간들에게는 거울 신경세포라는 것이 있다. 공감을 하는 데에 필수적인 신경세포이다.
혼자 보면 절대 웃기지 않을 상황에 녹음으로라도 웃음소리를 가미해 주면,
그냥 함께 웃게 되는 그런 현상이 바로 그 거울 신경세포의 작용이다.
그러니까 '공감' 이라는 것은 이미 인간의 DNA 에 새겨져 있는 본능적 기질이다.
그렇게 변형계 공명은 인간들의 본능이다.

왜 아담들은 공감을 하려 할까?
아니, 왜 아담들은 공감을 위장해서라도 자신의 나그네 됨, 이방인 됨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공감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나' 를 인정시키기 위한 인간들의 도피처다.
동료들의 수다에 끼기 위해, 그 무리 안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감한다.
유투브에서,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미니 홈피에서
'좋아요' 의 클릭 수에 의해 하루의 기분이 좌지우지 될 만큼 아담들은 공감에 민감하다.
그래서, 인간들은 점점 개성을 잃어가고,
더 심각한 것은 진리가 퇴색되고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공감 트랜드에 의해 ...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무리에서 속칭 왕따를 당하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성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나' 라는 자아를 구출할 때부터 '나' 이외의 대상인 '너' 들이 공감하는,
'상대가 공감하는 나' 로 구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 들이 '나도 너와 같아' 라고 공감을 해 주지 않으면 불안하다, 슬프다, 아프다.

그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너희와 같은 공감대가 있어' 라는 가면놀이 이다.
나그네로서, 이방인으로서 감내해 내야 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그런 가면 놀이는 과장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별로 웃을 상황이 아닌 데에도 박장대소를 하는,
진짜 웃긴 놀이들이 펼쳐지고 있는 세상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의 소비자들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는 원래 시대를 앞서 가며 그 시대를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문화라는 것이 소비자들의 공감코드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돈의 위력이다. 왕이 되어 버린 소비자의 힘이다. 하향평준화 ...
그래서, 세상이 점점 유치해지고 어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복음도 그렇게 공감 트랜드를 따라 하향평준화 되고 있다.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회중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회중의 공감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말씀이 하향평준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맨 날 '착하게 살자,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자, 나쁜 짓을 하지 말자, 선한 일에 힘쓰자' 에서
맴도는 수밖에 ...
그건 남해의 보리암에서 삼천 배를 하는 불자들도 중얼거리던 멘트였다.
그게 기독교의 목적지라면 우리는 불자들에게 완패하고 만다.
삼천 배를 하려면 적어도 새벽 세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여덟시까지 절만 해야 한다.
절을 한 번 할 때마다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앞으로 되어 질 '선한 나' 를 그리며 다짐해야 한다.

그건 모든 아담들의 인간 보편적 자존심 챙기기 현상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그 인간 보편의 자존심 챙기기에 공감의 형태로 하향평준화 되어 있는 것이다.
기독교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죄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 피 이야기, 심판 이야기, 부활 이야기,
이런 것은 인간 보편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그래서 인기가 없다. 시대의 문화 트랜드를 거스르는 우매한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나그네가 되고 이방인이 되고 왕따가 된다.
세상이 싫어한다. 공감 트랜드에 합류해 버린 기독교조차 그들을 비판하고 조롱한다.
그래서, 진짜 나그네가 된다.
그 속에서 진리를 담고 진리를 말해야 하고 진리를 살아야 하는 성도의 삶이 어찌 녹록하겠는가?
힘들어야 마땅하다.

교회 웹사이트에 올라온 우리 서머나 교회 중고등부 아이들의 탈랜트 쇼 티저를 보았다.
마지막에 우리 큰 녀석과 막내가 비트 박스를 하며 랩을 하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
큰 아이가 둘째 셋째 학교에 찾아가 무료 점심 급식을 요청하며
셋이 모두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당분간 아버님이 우리 곁에 없으니 우리도 아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리고, 홀로 있는 엄마 옆에 붙어서 늘 말동무가 되어주고 설거지를 도맡아 한단다.
알면 알수록 '저 녀석이 내가 낳은 아들이 맞나?' 할 만큼 속 깊다.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고 있는 그 아이가 올려놓은 유투브의 한 영상물로 가서
한동안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 내 아들 ...

거기에도 '싫어요, 좋아요' 버튼이 있었다.
'좋아요' 에 클릭을 하려다 큰 마음먹고 '싫어요' 에 클릭을 해 버렸다.
공감 트랜드에 젖은 아이의 감성이 소중하게 보존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이다.
아마 우리 아이는 그것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날 싫어하지? 누가 감히 나에게 공감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많은 생각을 하겠지.

"영민아, 세상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새 성도라는 자아를 세상의 공감에 맞추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거야.
성도는 세상이 공감하는 삶을 절대 못 살게 되어 있단다.
세상이 너를 보고 '싫어요' 해야 맞는 거야.
너의 인생의 '좋아요' 에 클릭을 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지금부터 잘 명심해야 한단다.
넌 나그네니까, 이방인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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