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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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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기미 (75.♡.149.35) 댓글 0건 조회 686회 작성일 21-01-1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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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드립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죽음의 공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다들 평안히 지내시는지 안부를 건네기가 왠지 머뭇거려지는 건 그 아픔과 슬픔에 놓여진 이들에 대한 송구스러움이 한몫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웅대하고도 장엄한 외침, “창세 전에 택함을 받은 사랑하는 나의 백성들아, 너희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 세상에서 빠져나와 내 옆에 가만히 서서 나 여호와 하나님이 홀로 이루는 선한 일을 지켜보라.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자녀가 될 것이고,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언약을 거들떠 보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 알아먹게 되어, 세상과 맞잡은 손을 놓고 거기서 돌이켜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바로 서게 됩니다. 그 일은 사람이 하는 일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 홀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그 은혜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칠 년 전부터였던가, 김성수 목사님이 소천하시고 난 후 지금까지도 “김성수 목사의 설교 비판과 이단 규정” 또는 그러한 “비판과 규정에 대한 반박” 등과 같은 이런 저런 일들이 적지않게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성경에 이미 그렇게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바인지라, 그걸 익히 알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을지라도, 결국에 그리스도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이 세상에 의해 죽임을 당해 장사도 지내지 못한채 길가에 널브러져 지나가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세상에서 약한 자, 천한 자, 미련한 자로 정처없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입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 그 생명의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알아가게 되는 은혜의 여정이라는 이 놀라운 역설이 하나님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신앙고백의 흔적으로 남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 선배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배웠듯이, 우리 아이들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바른 신앙의 토대 위에서 이 세상을 넉넉히 견디며 헤쳐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미워할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미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곡된 자기사랑과 자기자랑에 목숨을 걸고 있는 그들의 존재 가치가 산산히 부서져 가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는 그들로서는, 눈으로 보고도 현혹당하지 않을 수 없는 온갖 술수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그들의 목적에 맞게 짜집기하여 그들의 입에서 강같이 토해내어, 할 수만 있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밤낮없이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을 보이는대로 육체적으로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은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구원자로 시인하고 믿는 그 신앙을 부정하게 만들고 입으로 부인하게 하여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를 갈라놓게 하려고 미혹하고 이간질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이별하는 순간이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의 탈락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탄의 무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해서든지 오류가 있게 만들어 창세 전에 예정된 영원한 멸망을 막아보려고 죽을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는 이 사실이 오늘날 현실로 우리 주위에 깊숙히 다가와 있다는 것을 어렵지않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창세 전 예정하신 하나님의 그 언약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은 절대로 바뀔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상황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기세등등하게 세상을 활보하게 하는 힘과 능력으로 작용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세상에 맞아 죽는 고난과 역경, 궁핍과 고통으로 다가와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사탄의 미혹과 겁박이 속임수임을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어느 누구나 겪어내야 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고 기뻐할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는 단 하나,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공격 무기도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부 하나님 아버지는 이미 우리에게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값없이 거저 선물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으로 속옷을 매는 허리띠를 띠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그 의로 가슴막이하여 가슴을 가리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평을 이룬 평화의 그 복음으로 발에 신발을 신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구원자로 믿는 그 믿음을 방패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온몸을 둘러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 곧 확인도장을 받은 구원으로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로와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사탄의 속임수를 분별할 수 있고, 분간할 수 있으며, 분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소개하면서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의 왕인 사탄과 그 세력의 공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낼 수 있는 정도의 고난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견뎌낼만하다고 생각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사도 바울이 자랑했던 그 고난은 고린도후서 11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온갖 이단사설과 음행과 타락으로 오염되어 있었던 고린도교회, 사도 바울을 말더듬이라고 모욕하고, 사도라면서 하나님이 고쳐주지도 않는 불치의 병을 가진 자라고 업신여기고, 왜곡된 자기사랑과 자기자랑에 빠져 사도를 사도로 취급을 안했던 그 고린도교회에 눈물로 일갈하며 경계하라고 주의하라고 두눈 부릅뜨고 항상 깨어 있으라고 야단치던 그 사도 바울의 진심이 담긴 그 당부는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열렬한 관심으로, 여러분을 두고 몹시 마음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여러분을 한 분 남편 되실 그리스도와 약혼시켰습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뱀이 그 간사한 꾀로 하와를 속인 것과 같이, 여러분의 생각이 부패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순결함을 저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해도,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을 잘도 용납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잘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입니다.


내가 말에는 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든 일에서 여러 가지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높이기 위하여 나 자신을 낮추었고, 또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죄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삯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낸 셈입니다.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빈곤하였지만,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친 일은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도 하겠습니다. 그것은, 자기네가 자랑하는 일에서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인정을 받을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기회를 잘라 없애기 위함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놀랄 것은 없습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그렇다면,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행한 대로 될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려거든, 어리석은 사람으로 받아 주어서, 나도 좀 자랑하게 놓아 두십시오. 많은 사람이 육신의 일을 가지고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지간히도 슬기로운 사람들이라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도 참아 줍니다.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려도, 누가 여러분을 잡아먹어도, 누가 여러분을 골려도, 누가 여러분을 얕보아도, 누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누가 감히 자랑을 하려고 하면, 나도 감히 자랑해 보겠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말을 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아십니다.”


서머나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우리 모두, 아니 적어도 저는 김성수 라는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 가만히 서서 목사로서 그가 남긴 실로 엄청난 양의 설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분을 알아가게 되었고, 그 분과 마주 대하게 되었고, 그 분 옆에 앉게 되었고, 그 분을 두 팔로 부둥켜 안게 되었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몸된 교회임을 깨닫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여정을 한 발 한 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의미는 김성수 목사님을 신앙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 성도의 한 사람으로, 그 분이 걸어가신 그 나그네 여정이 나의 인생 여정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마중물이 되기에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항간에 나도는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 비판이나 이단 규정에 선봉장에 서 있던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한때 김성수라는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에 거의 광신도 수준으로 열광하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김성수라는 이름 석자를 찢어발기는 선봉으로 활보하고 있고, 그들의 교회에서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그러한 비판이나 규정을 반박하는 사람들도 서머나교회에 슬그머니 들어와서 교회를 이간질시켰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름만 대면 인터넷에 무수히 올라가 있는 그들의 구구절절한 신앙의 고백들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선한 모습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요. 그들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는 하지만, 말에는 그 사람의 말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어 그 의중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듣는 청자의 입장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기 전에는 우리 자신만을 생각했던 불순종의 자녀로 살았지만, 지금은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이자, 구원받는 사람들과 멸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죽음의 냄새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삶으로 증거하는 그 자체만으로,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이 세상 왕들 곧 사탄의 자식들에게는 영원한 형벌로 영원히 멸망 당해 죽은 자임을 드러내는 죽음의 냄새로 다가가 그들에게 아무런 해꼬지를 안했는데도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나 으르렁거리는 것이고, 나의 죄와 허물로 인해 죽어 있는 자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구원자로 믿게 된 하나님 나라의 왕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산 자임을 드러내는 생명의 향기로 다가가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며 이 세상 나그네 여정을 위로하고 격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힘써 모여 서로 부딪혀 보아 각자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꺼내어 보는 것입니다. 다들 각자 그 길이와 높이와 깊이와 넓이의 정도는 조금씩 다를지는 몰라도, 그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 하나된 그리스도의 소망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처음과 끝이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설교를 듣고 보는 이들이라면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를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삼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르는 불신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처음이요 창시자인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허락하신 그 믿음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십자가에서 완벽하게 완성된 것이며, 그 믿음을 어떤 객관적인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 믿음이 많으니 적으니 말하는 것은 머리에 활활 타는 숯을 이고 지옥불 속으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자일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를 알아가는 지식 안에서 그 자라남의 정도는 있을 수 있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푸시키코스, 사르키코스, 푸뉴마티코스 정도로,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어린이, 청년, 아버지 정도로 설명되어질 수 있겠지만, 사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는 아버지에게 아무 때나 '이건 뭐에요, 저건 뭐에요' 달라고 할 수 있고, 청년은 아버지에게 '이건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황에 따라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아버지는 청년과 어린이에게 항상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곧바로 건네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몸인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유기적으로 양분을 공급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직접 얼굴을 대면하여 만나지 못해도, 온라인 상에서 얼마든지 서로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걸 아는 우리들은 이 땅에서 그렇게 세상이 우리를 향해서 돌팔매질하고 칼을 갖다들이대도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는 자들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자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누리는 자들의 삶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들을 성도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신실한 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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