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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베를린 천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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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기미 댓글 0건 조회 3,029회 작성일 18-12-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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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 라는 영화 초반에 천사 다니엘이 이런 독백을 합니다.
'아, 그거 참 좋겠다. 
필립 말로처럼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 ...'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러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필립 말로라는 인물을
천사가 부러워하는 그런 장면이 어떻게 제게 이해가 될 수 있겠습니까?
번잡 다단하고 남루해 보이기까지 한 중년 탐정의 일상이 부럽다는 천사,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소중한 가치를 살짝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 속의 소망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일상이 너무 경홀히 여김을 받게 될 우려가 있음을
저는 목회자의 실존적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치는 개개의 일상들, 흔히들 그걸 풍경이나 환경 등으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러한 개개의 일상들에 그저 심드렁하게, 혹은 무관심하게 대하곤 하지요.
어떤 취향 공동체의 종족화 현상에 대한 반감이라고 해도 좋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차 창밖의 소란스러운 세상과는 늘 괴리되어 살았고,
될 수 있으면 그러한 일상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 유익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나' 라는 존재는 어떤 그림 속에 감추어진 작은 점처럼,
죽어 버린 박재들 속에서 탈출을 꿈꾸기만 하는 가련한 자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외로웠나 봅니다.
그게 복음 전하는 자로서의 외로움이라 애써 자위하며 
'괜찮아, 넌 갈 가고 있는 거야.' 하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세상과는 점점 더 담을 쌓고 살았나 봐요.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 이라 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무리를 짓는 일에 열심들을 낸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유의 번잡스러운 교제는 외로움과 자괴를 위장하려는 눈물 나는 애씀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늘 홀로이길 즐겼더랬습니다.

그래서, 더 외로웠나 봐요.
그 외로움 끝에 예수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꼭 대미를 장식했기에
전 그게 맞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전 그게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은 외로워서 누군가를 그리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잖아요.
사람은 외로워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만 그리워하다가 자연스럽게 외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더 알고 싶고,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고 싶어지나 보지요.

한국의 가을을 십 수 년 만에 만져봅니다. 말 그대로 한국의 가을은 만져집니다.
어디로 이동을 할 때 저의 눈은 항상 활자에 가 있었습니다.
번잡스러운 남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보다 활자의 가치를 더 쳐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조차 낯섭니다.

그런데, 한국의 가을이 차 창밖으로 만져지는데 
눈 앞의 활자들이 이리저리 춤을 추더니 고국의 가을 하늘 위로 제 시선을 돌려줍니다.
활자보다 눈 앞에 열리는 풍경들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겨본 것이 언제 이던가요?
차창을 열었더니 알맞게 차가운 바람 냄새가 코 끝에 와 닿습니다.
제 손에는 분명 오늘 내로 다 읽어내리려 고르고 골라 산 진중권의 새 책이 들려 있는데,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가을이 이겼습니다.

그렇게 달려 한국의 동지들을 한 사람씩 만났습니다.
다들 너무 어려운 일들에 직면해 계시더군요.
한국에 오면 꼭 한 번 전화를 해달라고 메일을 보내오신 여러분들 중에
제가 갈 수 있는 곳에 계신 분, 그리고 정말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을 추려서 전화를 했습니다.

어떤 분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지금 자다가 일어났는데, 혹시 이거 꿈 아닌가요?'
하고 물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만큼 믿음의 동지들과의 교제가 필요했던 것이겠지요.
각자의 자리에서 잘 이기고 계신 우리 형제자매들과의 만남 후에 숙소로 돌아오면서
또다시 차 창밖으로 열리는 한국의 가을을 손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의 사람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뚫어지게 ...

신기하게도 그들이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로 보이기보다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아름다운 창조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오랜만에 내가 알지 못하는 저 창밖의 일상을 향해,
그 일상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내 안에서 예수가 그 분이 사랑하는 자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제게 보여주시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예수의 마음으로 사는 삶은, 
일상은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인데 그동안 참으로 고립된 외로움을 자초했었나 봅니다.
모든 일상은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품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잊고 살았습니다.

내일부터 한국 집회가 시작이 됩니다.
사흘간의 집회이지만 여러 종류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것 같습니다.
때때로 보내주시는 우리 교인들의 응원 메일에 힘을 내봅니다만,
여전히 몸은 힘들고 잠이 부족합니다. 그 놈의 잠 ...
시간 속에서 해방이 될 그 날까지 그놈 하고는 친하지 못할 것 같네요. 기도해 주세요.

한국의 가을에 취해 오랜만에 끄적여 보았습니다.
지금도 창밖에는 높디높은 파란 하늘이 
초등학교 가을 소풍 때의 그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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