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음성을 허무시는 하나님 - 글쓴이: 현암 작성일: 14-09-02 10:08 > 세인트 루이스 모임 :: St. Lo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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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내면의 음성을 허무시는 하나님 - 글쓴이: 현암 작성일: 14-09-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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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기미 (75.♡.149.35) 댓글 1건 조회 6,882회 작성일 18-12-09 16:51

본문

자신으로부터 부인될 수 없는 내면의 음성을 성경에서 찾아 보자.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그들의
마음 속에 뱀의 유혹(죄)에 동조하는 내면의 음성을 듣게 된다.
눈이 밝아지고 선악을 알게됨을 전하는 뱀의 유혹에 대해
선악과를 먹는 행위 이전에 자신의 내면에서 긍정과 욕심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더 나아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게 하여 내면 스스로 자신의
당위성을 강화 시킨다. 피창조된 인간에게 세상에 존재치 않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능력은 없다.
그러므로 외부의 죄에 대해 반응하는 나의 내면의 것은 원래
존재해 왔다고 보아야 한다. 없던 죄가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악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존재하던 죄가 반응하며 드러나게 된 것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존재하던 죄와 무력함이 드러나게 된
것과 같다.  또한 나무를 먹음직하게 바라본 하와의 시선은 외부의
유혹(죄)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같은 물체라도 관심없이 보는 것과 탐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그 물체에 대해 다른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하와는 선악과를 보며 자신의 탐심을 드러내게 된다.
아담과 하와는 우리가 늘 행하는 위선과 포장을 배움없이
잘 소화해 내었다. 왜냐하면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이었으니까.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치마를 입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고
하나님의 물음에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타인에게 그 잘못을 전가시키기까지 한다.
태초의 인간이 내게 주는 절망의 선물이다.
 
아담과 하와의 자식 가인으로 가보자.
그는 한술 더뜨는 모습을 보인다.
내면의 모습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는 커녕 자신의 분도 이기질 못한다.
안색이 변하기도 하고 아벨을 죽인 자신의 잘못을 보기 보다는
자신은 아우를 지키는 자가 아니라며 죄의 본질을 왜곡시키기까지 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물의 심판 후에 노아에게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8장 21절)
이르시며 인간 내면의 죄의 원시성을 말씀하셨다.
 
한 사람 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만나보자.
역시 위기의 순간마다 이기적 발로의 내면의 음성을 좇는 절망을
바라보게 된다. 16장에서 사래는 뱀과 같은 유혹을 아브람에게 던진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 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아브람은 언약을 뒤로 하고 자신속에 품고 있던 욕심으로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내면에 이끌리게 된다.
언약 가운데 심중으로는 다른 마음으로 이끌리고
두번씩이나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목숨을 구걸한다.
이정도면 우리의 내면이 우리 밖으로 드러내는 위선과
이기적 발로의 욕심을 보여주는 최초의 인간 모습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그들이 스스로 선하다 하여 내어놓는 행위가 있다면
그것이 정말 선에서 비롯되어진 것일까?
만약 있다면 우리 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이 자명하다.
 
그렇게 자신에게 충실했던 위선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어느날  찾아 오신다.
22장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여기서 보이는 시험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를 짚어보면
첫째 시험이 있기 위해서는 알지 못했던
       무엇을 외부로부터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시험은 시험 의도자의 가르치고자 하는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셋째  시험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시험 의도자에 의해 내려진다.
22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시험 문제를 내어 놓으신다.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신 언약의 징표요,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했던
바로 그 자신이라 볼 수 있는 아들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부인함이요,
스스로 번제물이 되어 죽는 것보다 더한 자기 부정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내면에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을
스스로 부인케 만드는 시험 문제를 만들고 수십 여년간의
인생 여정을 통해 가르쳐 왔던 것이다.
22장 12절에 시험의 목적이 나온다.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자신을 온전하게 부인함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니 이미 그자신의 내면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자신이
부인되어져 있던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믿음은 자신의 인식 밖에 있었고
그 믿음의 생성은 시험 의도자에 의해 기획되어지고,완성되며,
평가 되어졌음을 볼 수 있다.
그 시험을 통과하여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에 의해 평가되어지고
이름 받았음이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자아는 부정되어져야만 할 실체였고
그것을 허물어 가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우리의 인생이 펼쳐지고 그 여정속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의 상태가 되면
하나님은 그를 두고 믿음이라 일컬어 주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열심이 세상을 움직일 만한 믿음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분의 인도하심 속에 놓여지게 되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내 마음의 심중에 자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향한
집요한 신념에 불과할 것이다.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의 하나님, 즉 우상을 섬김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강보에 싸여 우는 아이 같은 나를,
나의 내면 외에는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나를
당신의 정하신 계획 속에 시작하시고, 이끄시고, 시험하시고,
이름하여 의롭게 하신다.....
 
 
 
PS  묵상을 정리한 거라 틀린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적하여 주시면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감사함으로 받겠습니다.
       "시험'이라는 단어에서  '옳거니' 하며  저의  지혜(?)를 잠시나마
       혼자 기쁨으로 누렸는데,
       원집사님 글에서  페이라조,도키마조에 대해 언급된 뜻을 후에 보고
       "이럴수가'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이 이렇게 빈틈 없이 그리고
        완벽하게 진행되었음을 보았습니다...

댓글목록

섬기미님의 댓글

섬기미 아이피 (75.♡.149.35) 작성일

원피디 14-09-02 14:45
샬롬 전집사님,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드립니다.

올리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 함께 나누실려고 했던 아브라함의 그 시험을 우리네 인간 군상들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아담 군상들은 그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저마다 자기의 선악 구조 아래 갇혀 하나님을 해석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작정하신 그 약속을 밝히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저 자신을 봐도,
제 주위에 던져진 이 세상의 모든 시간살이들은 저의 죄인됨을 폭로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그 리트머스 시험지의 색깔을 보지 못했을 때는 제 나름대로의 색깔을 마음 속에 그려보곤 했지요.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그 색깔이 보여지게 될 때는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그 때 처음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은 선악의 구조 뒤로 숨어버리는 거지요.

그러나, 성령이 맺으시는 열매는
담대히 그 죄의 완성 앞으로 나와 그 죄를 바라보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 죄와 마주 서서 그 죄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말과 같을 겁니다.

결국, 나의 죄인됨을 폭로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그 시험이
나로 하여금 그 죄와 결별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 시험으로 여겨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그리스도인에게서 나오는 말은 찬송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오, 거룩한 죄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맨 처음으로 홀로 걸어가신 그 길, 그 여정을
지금 우리도 걸어가고 있다는 그 사실을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그 마음으로 간직하게 될 때면,
그 발걸음 하나 하나가 그리 외롭지만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동무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 옆에 가만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페이라조, 도키마조 ...
그건 우리의 사고로 해석하고 사유할 수 있는 성질의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험 안에 거하게 되는 그 시간이 불현듯 깨달아질 때면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머금게 되지요.
"아,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어제의 나는 또 한번 죽습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죽은 나를 보며 슬퍼하지만,
내일의 나도 오늘의 나를 보며 그럴거라 생각하면 애통과 함께 오는 감격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힘내시구요, 멀리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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