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부터의 도피 - 글쓴이: 부득불 작성일: 14-12-31 17:09 > 세인트 루이스 모임 :: St. Lo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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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믿음으로부터의 도피 - 글쓴이: 부득불 작성일: 14-12-3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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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기미 (75.♡.149.35) 댓글 1건 조회 4,565회 작성일 18-12-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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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겪은 독일 국민들은 패전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아야 했다.
많은 다른 어려움 보다 희망이 없는 오늘을 살아야 하는
암담한 현실에 좌절해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상처난 마음을 달래줄
초인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출구는 광적인 나치즘과 대량학살이었다.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 를 통해
전후 독일 국민에게 나타난 사회 병리현상을  진단했다.
여러가지 원인을 제시하지만 키워드는 "소외" 였다.
패전이라는 극단적 환경이 그들을 더욱 광적으로 몰아 세웠지만
그로부터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통의 본성을 끄집어 낸 것이다.
 
고독에서 느끼는 불안을 선택하기 보다는
자신의 근원적 자유까지도 포기함으로 얻는 일상의
안전감을 선호한 것이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이기 보다 우매한 군중속에라도
자신을 묻어 버리고 싶은 것이다.
 
채 한 세기도 전에 지구 반대편의 낯선 이방인들은
자신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광기어린 잔혹함을 선택한다.
피는 나치의 손에 묻혀졌지만,
역사는 그들을 주역으로 내세워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본성을
에릭 프롬은 인간이 가지는 "소외 의식" 으로 본 것이다.
 
30년 묵은 나의 소외감과 허망함이
십자가 앞에 다시 세워졌다.
그건 분명 젊은 날의 아픔이었고 여전히 내게서 떠나지 않고 있는
내안의 실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나였다.
사회 현상으로 넘겨 버린 아픔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으로 다시 선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떠난)  내게 세상은 괜찮은 곳이었다.
하지만 점차 자라난 나의 지식 (밝아진 눈) 은
내 자신의 한계 (벗은 줄을 알고) 에서  오는
무력감 (두려워 하여) 뿐이었다.
때로는 세상을 등지고 (숨었나이다) 싶어 했고
때로는 안정된 삶 (성을 쌓고) 으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소외된 (놋 - 유리 - 땅에 거주) 인간으로서 느끼는 공허감과 고독은
이 땅의 삶의 허망함 (여호와 앞을 떠나서) 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런 허망함 가운데 낯선 이방인들의 망령이 되살아 난다.
같은 DNA를 가진 인간으로서 가지는 한계이자 아픔이다.
아담과 가인 그리고 그들은 내게 진실을 말해 준다.
 
너는 스스로 밝아진 눈을 자랑하고
스스로 자신의 수치를 감추고
스스로 세상에 마음을 두니
너는 스스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두려워하여 숨으리라....
 
PS. 서머나 가족 여러분 새해 "복음 " 많이 받으세요!!

댓글목록

섬기미님의 댓글

섬기미 아이피 (75.♡.149.35) 작성일

원피디 15-01-01 10:24
샬롬 전집사님,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드립니다.

몇 해 전 이곳 모임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일 때에
이곳의 이모저모를 모든 분들께 메일로 보내드렸었습니다.
김성수 목사님께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서로 주고받는 말들과 이러저러한 질문들이
몇 달 동안 여과없이 드러났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김성수 목사님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나눔을 메일로 보내주시곤 하셨지요.

그 당시,
이런 저런 질문들을 말하신 분들의 이름을 적어 목사님의 나눔과 함께 나열하였었지요.
그 질문들은 어느 한 사람의 궁금증에 국한되었다기 보다는,
모든 이들의 마음 가운데 꽁꽁 숨어 있었던 진솔한 답답함과 뿌옇게 흐린 자화상이었습니다.

김성수 목사님은 매달 그렇게 주고받는 메일의 내용 전부를
남가주 서머나 교회 곧 지금의 미주 LA 서머나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셨지요.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고민했었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도 고민할 내용이라서
함께 나누자는 의미로 올리시는 것이었는데,
어느 새인가 이곳 모임 가운데 남가주 서머나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간 글에 대해
자기 이름 또는 자기 질문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김성수 목사님께 게시글 가운데 이러저러한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드렸었지요.
그 후에 일어난 광경은 불 보듯 뻔하였지요.
곧바로 매달 올라가 있었던 게시글들이 게시판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은 북가주 설교방송과 제 2의 도약의 계기가 되었던 두 개 정도의 글만 남아 있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나그네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수수께끼들은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태초로부터 차서대로 놓여진 하나님의 섭리임에도,
하나님의 그 섭리를 가리키고 설명하고 드러내는 '나' 라는 도구가
자기 스스로 내놓는 말인양, 마치 그 말이 자기 것인양, 자기 옆에 두려고 손으로 움켜잡더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터넷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보여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겸손과 낮아짐 이라는 자기 위장 안에 감추어진 집요한 자기 증명과 자기 영광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네 모두는
하나님의 법 아래 갇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은 그 은혜를 밝히 드러내는 가지일 뿐입니다.
그 포도 나무에 거저 값없이 접붙여져 있는 그 가지 말입니다.

가지치기 (카따이로, trim) 는 그 가지를 잘라 없애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죽어 있는 그 가지를 잘라 그 가지가 더 이상 죽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만 그 잘린 가지 끝으로부터 새순이 돋아나기 때문이지요.
그 새순은 그 나무로부터 나오는 그 나무의 생명일 겁니다.

그 생명을 '나' 라고 여겨주시니 은혜지요 ... 찬송하리로다!


부득불 15-01-02 13:49
안녕하세요...  원집사님.

늘  보여주시는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지난번 "사족"에서 집사님께서 언급하신  것과 같은 염려로 잠시 고민 했었습니다.
진리를 보고, 듣고 토해내는 저의 어리석음과 쓰레기로 보이는 저의 결과물을 보고
잠시 마음이 불편했었습니다...

하지만
집사님 말씀대로  쓰레기 조차 내 것으로 인식하는 저의 교만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내 안의 것도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의 소유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데 말입니다.

설령 있을지 모르는 비판의 시선이나 험담도  그리 마음이 쓰이지 않는 것은
나의 이 모든 죄를 품어 안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이요,
그로 인해 혹여 저의 강함이 꺽이거나
저의 약함이 드러나는 수치 또한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에 있음을 앎입니다.

비록 잠시 아픈 시절을  겪어야 하겠지만
그 또한 그리스도의 평강을 구하는 은혜가 되네요...
찬송하리로다 !!


abby진 15-07-05 06:43
안녕하세요.
버지니아에 진옥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십시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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