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 깨나 열심 조심 꺼진 열심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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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메인 > 소식   
 
작성일 : 16-03-23 09:38
[기도] 박정우 라는 젊은 강도사가 사 년간 연구한 '김성수 목사님의 신학과 그 오류에 대한 보고' 를 읽고
 글쓴이 : 원피디  
조회 : 1,028  

샬롬,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열정으로 
자기 존재를 자기 스스로 지키려는 자기 사랑의 극치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을 알게 모르게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자기 이성이 정립한 세계관으로 그 상황에 맞게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거저 주어져 있는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의 은혜는,
그리스도 라는 그 경계 밖으로 자기 스스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창세 전 언약이라는 기둥에 머리가 잘리고 사지가 못박혀 매달려 있게 만듭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이름 붙인 '김성수 신학' 이 복음이라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철학 하기를 통해 제시된 복음적인 설교의 일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끝이 다른 '이단' 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섣부른 김성수 신학 비판이 아닌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해체 작업이
우리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찬 물결 가운데 나뭇잎 배 위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개미를 상상해 봅니다.
그럼에도, 그 세찬 물결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가 끝인지 모른다면,
하루 하루 살아가는 그 오늘은 내일이 오지 말았으면 하는 절망으로 점철되어 버릴 것입니다.

아래는 박정우 라는 강도사가 제시하는 
김성수 신학의 오류들과 각 항의 오류에 해당하는 내용을 수정 없이 간추려 발췌한 것입니다.
누군가 이러한 논리로 접근하여 '당신은 이러이러하기에 잘못 가고 있어요'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그냥 지나치시겠습니까,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말로 맞서 싸우시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그리스도인이여,
하나님의 긍휼 안에 선물로 거저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그 복음만으로 
안식 그 죽음 그 고요를 즐거이 누리는 우리 모두이기를 빕니다.


오류 1. 
피상적인 진리에 대한 인식으로 자기 스스로를 더욱 견고히 율법화 시키는 신학
오류 2. 
진리가 '나' 라는 실존적 자아에 흡수되는 형이상학적 사변으로
인간을 더욱 비인격화 혹은 재율법화 시키는 신학
오류 3.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실존에 참여하는 사유 방식으로 자신을 더욱 존재화시키는 신학
오류 4. 
수동적인  “깨달음” 만으로 인간을 완전한 도구화 혹은 기계화로 변질시켜 버리는 신학
오류 5. 
인간의 그 어떠한 의지적 형태나 하나님의 뜻의 실제성을 부정하고
양심은 저급하고 정신이 고급하다는 신학
오류 6. 
예수의 탄생, 십자가 죽음, 부활, 재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고급한 정신인 나를 위한 사상적 재료로만 사용하는 신학
오류 7. 
진리적 존재화를 부추김으로서 우울함과 무기력함으로 영혼을 깊은 구덩이로 빠트리는 신학
오류 8. 
자기 스스로를 진리라 여기며 자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설교를 듣는 자들에게 어리석음을 전달하는 신학
오류 9. 
진리가 되어도 여전히 옛사람인 자기를 위해 로만 카톨릭에서 제시하는 고해성사를 한 김성수
오류 10. 
성경의 기본이 없이 처음 설교를 듣는 이들로 하여금 지성의 욕심을 자극하여
그 설교에 중독되게 만드는 독
(그러나, 약이라는 양면성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거기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음)
오류 11.
성경의 표피적 해석은 저급하고 은유화된 정신사상만을 강조하여 예수의 역사성을 희석화시킨 신학
오류 12.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정한 율법적 행위를 조장하는 신학
오류 13. 
성령의 조명을 받기 전이나 후에도 언제나 옛 자아의 이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본성을 잊게 하는 신학
오류 14. 
성경 원어의 자의적 해석으로 일관한 신학
오류 15. 
이성의 재고착화를 유도하여 여전히 옛사람의 범주에 머물게 하는 신학
오류 16. 
성도의 교제가 없이 자기 극복으로 결실을 맺은 신학
오류 17. 
도가 사상과 불가 사상에 영향을 받은 칼바르트의 신학을 계승한 신학
오류 18. 
이근호 목사의 신학을 일부 수용한 신학
오류 19. 
'역사적 예수 (Historical Jesus)' 를 노자 사상과 칼바르트의 사상에 접목시킨 '이성주의' 에 서 있는 신학
오류 20. 
성령과 상관없이 세상학문을 동원하여 말씀의 조명을 잃게 하는 신학


[서론]
먼저 이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여러분에게 요청되는 2가지의 전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것은 분명 오류에 대한 수정이지 전체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시 예수와 십자가를 전했고 저 역시 동일하게 그것을 전하니 
전체적으로는 그나 저나 다를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분리나 왜곡이 항상 부분에 의해서 일어나며 부분은 전체를 언제든 왜곡된 방향으로 
끌고 갈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 부분을 수정하는 것은 매우 필수적으로 보입니다.

여러 반대자들이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고작 몇 편을 듣고 그를 비판하려 했기에 실패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4년간 꾸준히 그의 설교를 듣고 
그의 신학적 오류를 끄집어낸 시점에서의 제 글은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동시에 이 글의 목표가 혹시 얻게 될지도 모를 저의 어떤 신학적 성과나
보다 나은 새로운 사상으로의 접근 같은 것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 

오류 1.
그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예수와 십자가를 지키려 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표상을 견지하기 위해 성령의 분별없이 동원되어야 했던 여러 사상들과 
그것들의 결합이나 꼬임 같은 것들이 단순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믿음을 매우 혼잡하게 만들었으며
혼합된 개념으로 인해 많은 성도들을 미혹된 길로 이끌었음은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지금껏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들은 성도들을 만나보면 또 서울 서머나 교회에 있었던 성도와 교제하면서
그곳 교인들의 영적 현실에 대해 접했을 때를 상기해 보면 
성령을 통해 거듭남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보다는 피상적인 진리에 대한 인식으로
스스로를 더욱 견고히 율법화 시키는 오류들을 생성하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오류 2.
김성수 목사가 표상으로 견지하려했던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그의 후기 설교(한국에서 목회를 시작한 시점)에서 사상적 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더 이상 성령을 통하여 신자 내부에서 발생하는 초월적인 사건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닌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의 실존에 내가 참여함으로써 바로 내가 그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것 
즉, 진리가 나라는 실존적 자아에 흡수되는 존재론적 서술이 주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을 토대로 형성되는 형이상학적 사변은 
실제적으로 인간을 더욱 비인격화 혹은 재율법화 시킬 수 밖에 없는 구조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를 신학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성주의’라고 합니다.

오류 3.
그의 초기 설교들은 로이드존스의 설교와 거의 흡사할 정도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행위(성화)
강조하였지요. 하지만 중기를 거쳐(개인적으로는 이때가 가장 복음적이라 생각합니다) 
후기 설교에 이르러서는 칼바르트나 불트만의 신학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그는 여기서 칼바르트의 신학을 수용한 듯 보이는데요.
즉,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실존에 참여하는 인간만이 계시 즉 하나님의 초월적 현실에 충돌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본회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궁극 이전의 나에게서 궁극이후의 나로 전환 되는 것이며,
김성수 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리가 되기 이전의 나에게서 진리가 된 나로 전환 되는 것입니다.
이 실존 안에서의 경험은 정신과 감정과 이성을 통째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며 
그것은 분명 초자연적이고 무시간적인 어떤 독립적인 영역에 접해짐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매우 특별한 것이기에 이 경험을 한 자기 자신 안에서 특별한 사유 방식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유가 오로지 자신을 더욱 존재화시키려 하는 진행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불트만과 같은 오류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오류 4. 
김성수 목사는 불트만과 같이 예수의 역사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인간의 정신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의 충돌로 보는 관점
에서는 불트만과 같습니다.
이 계시와의 충돌에 있어 감각이나 경험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깨달음”이 중요할 뿐입니다.
(물론 중기의 그의 설교는 이부분에 대하여 꽤 옳은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성은 경험적인 것의 저급함 보다 높은 우월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전개는 인간을 완전한 도구화 혹은 기계화로 변질 시켜 버렸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분명 인간 스스로의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의해 반응될 수 있는 ‘인간 안에 있는 것’ 임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활동으로 인한 완벽한 수동성에 의해 모든 표현과 나타남은 거절당해 버리게 된 것이지요.

오류 5.
(그의 후기 설교 중에서) 그는 기도를 인간이 표현하게 되는 어떠한 의지적 형태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되는 하나님의 뜻의 실제성이라는 측면보다는 그저 ‘삶 자체가 기도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분명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정신에게만 국한될 때 이 말은 기도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에서 조차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 그 참 말을 전하는 것’ 이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에게 있어서 모든 감각적 행위들은 정신의 그것으로만 전환됩니다.
그러면 사랑 역시 정신이 감수해내야 할 어떤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로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행동하는 모든 양심들을 가장 저급한 것들로 해석해 냅니다.

오류 6.
불트만이나 김성수 목사는 둘 다 계시를 경험하였지만 그 계시의 연속성을 오로지 사상으로 전환하여
이성의 특별한 활동안으로만 제한함으로써 그것이 도출하는 수많은 오류의 열매들을 내놓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예수의 역사성이 매우 취약해 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김성수 목사가 불트만의 신학과는 달리 예수의 역사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표피적 해석에서 벗어나는 율법과 진리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형이상학적인 원리를 
일관적으로 고집하는 바람에 예수의 역사성이 매우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그는 로마서 90번대 설교에서 짧은 한 문장으로 예수의 재림은 이미 우리 안에 실현되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즉, 성경의 모든 언어에 대하여 묵시성을 일관적으로 유지하려 함으로써 
그는 재림을 정신안에서 자기화된 사변적인 진리안으로 함몰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의 탄생, 십자가 죽음, 부활, 재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은 오로지 실존하는 나를 위한
사상적인 재료로만 사용될 뿐이지 그 사건의 특수함 자체로는 효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된 실존은 진리에 대한 이성의 지속적인 사유를 함으로써 
결코 오류에 빠질 수 없고 옛사람의 재형식화의 범주에 귀속될 수 없다고 여긴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의 성경해석이 최고고, 자신이 하는 말은 다 진리고, 
자신의 믿음이 가장 초월적이라는 이런 괴담을 늘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오류 7.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매일 2년 동안 들으면서 실제로 그가 말하는데로 한번 살아보기로 작정을 하고 
실천하였을 때, 저는 전도사 사역을 하면서 한번도 기도를 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어떤 친절한 행동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헌금도 하지 않았고 진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상태가 어땠는지 아십니까? 나만이 진리를 아는 사람이고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내가 하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경청해야만 하는 그런 참 말이라고 스스로를 굉장히 진리적 존재화 
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심령은 더욱 메말라지고 정신은 날카로워지며 우울함과 무기력함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훗날 저는 그것이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듣는 자들의 공통적인 증상이였음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2년 동안 저는 전혀 하나님의 말씀의 현실을 살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지성은 발전하였고 사유의 방법은 진보되었지만 제 영혼은 더욱더 깊은 구덩이로 빠져 버렸습니다. 
사역지를 옮기면서 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앙을 다시 회복하며 이전에 경험했던 말씀의 실제성 안의 그 능력들을 다시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류 8.
김성수 목사는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만을 따르고 그것 안에서만 사유해야 했었는데 
스스로를 진리라 여기며 존재화 시키는 작업을 지속함으로써
자신이 현실속의 그리스도 안이라는 영역에서 벗어나 옛사람의 영역에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 자신을 가장 어리석은 자로 만들어 버릴 뿐 아니라 자신의 설교를 듣는 자들에게까지 
그 어리석음을 전달한 것입니다. 

오류 9.
우리가 신의 성품을 가졌다 한들 그 표현하는 방식이 인간이 본래 나타내는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면
그는 인격체가 아닌 동물일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질적 생명체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더욱 말씀의 실제성을 누릴 수 있으며,
우리의 찬양은 더욱 심령의 깊은 곳에 도달하여 초월적 기쁨과 위로를 경험하고, 
우리의 사랑은 악인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조차 내어줄 수 있는 가장 낮은 이 특수한 마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성 혹은 인격성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결코 배제 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더욱 풍성하게 인간에게 나타내십니다.
김성수 목사는 진리가 되어도 별로 바뀌는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조명받은 이성을 가지고도
옛사람의 영역에서 성령과 상관없이 완고한 마음으로 살아갔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울지마 톤즈나 그의 감각에 특별한 사건이 나타날 때마다 고해성사를 했던 이유가 나타났던 거지요.

오류 10.
여러분들이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이해하였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진리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사용한 용어들을 차용한다고 해서 혹은 그의 설교를 많이 들었다고 해서 
진리가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제자들과 후배들이 김성수 목사 설교를 듣고 제게 말을 걸면 저는 그의 설교를 듣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성의 욕심은 끝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을 배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을 따라 김성수 목사의 말을 더욱 붙잡으려 함으로써 
그들이 오류에 빠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기본도 없이 처음부터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듣고 혼란과 오류에 빠진 성도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김성수 목사의 설교는 가장 좋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이 패러독스를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류 11. 
‘표피적 해석’은 모두 저급한 것으로 평가하고 그러한 일관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성경안의 모든 문자가 메타포하는 사상을 십자가와 부활사상으로만 환원하여 
실존의 자신안에서 자기에게 투여시킨 것.
그래서 뛰쳐나온 것은 예수 육체의 비인격화, 희미해져 버린 예수의 역사성, 인간의 도구화 혹은 기계화. 
진리적 관념에 의해 해체된 재림의 역사성 등이 있겠네요.

오류 12.
‘희생제사’의 개념은 그가 하는 성경 해석에 매우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희생제사란 ‘예수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희생을 드리셨으므로 인간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초기에는 존 오웬의 ‘죄 죽임’이라는 책의 내용을 통해 날마다 십자가의 죽음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그러한 활동으로 존재하는 예배, 기도, 찬양, 헌금 같은 것에 대하여 열심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는 과도기를 겪다가 후기 설교에서 그의 희생제사 개념은 
매우 이성적인 사유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단번의 완전한 희생을 드리심으로 구원에 대하여 인간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성립되기 위해선 짝으로 존재해야 할 다른 항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완전한 희생에 날마다 참여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신자는 완전한 희생 안에 참여됨으로 구원적 위치에서 더 이상 어떤 행위도 할 필요가 없는 
자유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 사항을 염려하지 않고 먼저 예수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을 상정해 두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의 모든 행위가 바로 무엇인가 그토록 하는 율법적 행위로 바뀌어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김성수 목사의 말대로 묵시속에 완성된 구원을 토대로 우리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말해 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묵시속에 포함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 깊은 생각이 필요한 부분
입니다. 이 부분이 김성수 목사가 이근호 목사님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류 13. 
김성수 목사의 후기 설교의 성화론은 신자 자신을 더욱 진리가 된 실존의 존재화에 있는 것입니다. 
그 위치에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예수안이라는 초월적 영역에 존재해 있으며 내가 ‘예수화’(진리)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당신도 이 위치에 오셔야 합니다’ 라는 자기 우월적 위치에서의 차별적인 초청입니다. 
그는 믿음이 차별적이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결국 존재화 시킨 본인의 신학작업을 통해 차이를 발생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꽤 이해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매우 특수한 위치에 올려 
놓는 것입니다. 불트만에서 보았듯이 예수가 역사에서 가진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메타포적 해석이며 표피적 해석이고, 율법적 해석이지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하여 나의 실존을 존재화 시키는 것이 곧 신자의 목표임을 설정해 두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이성은 조명받기 이전에도 조명받은 이후에도 
언제나 옛 자아의 이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시적으로 완료된 그리스도안 뿐 아니라 육체 안에서 인간 영혼은 
지금 여기 현실의 그리스도안이라는 영역에 머무를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복종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루시는 개별적 인도하심이 있으실 겁니다.

오류 14. 
로마서에 보면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길지어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여기다’는 헬라어로 ‘로기조마이’인데요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왜 김성수 목사가 이 희생제사 부분을 이토록 인간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완전 수동형태 즉, 도구화 혹은 기계화로 확정지을 수밖에 없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다’에 대한 그의 해석은 이미 그렇게 된 사실을 이성으로 확정지으며 살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신자는 죄에 대하여 죽었으니 이미 그렇게 된 사실에 대하여 죄가 드러나도 회개할 필요도 없고, 
기도할 필요도 없고 그냥 그 확정되니 말씀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오류 15. 
진리가 이미 되었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성경어디에도 그런 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전 도대체 이러한 진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은 표현의 해체로 인한 정신적 침체 즉, 신앙 감정의 상실을 낳고 (여기서 신앙 감정이란
궁극이전의 보편적 인간의 그것이 아닌 그리스도 안의 영역에서 발생되는 낯설고 초월적인 감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성의 재고착화가 발생되어 그로 하여금 다시 옛사람의 범주에 속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류 16.
만약 제가 동일하게 김성수 목사님이나 이근호 목사님과 같이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계시의 세계를 
맛보았다면 또 맛보고 있다면 그들과 저는 ‘그리스도 안’이라는 공통적인 분모가 설정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과 저의 차이점은 분자의 위치에서 개별적이고 부수적인 지식과 이해에 대한 차이
뿐이지 분명 사유에 대한 능력 곧 그 중심적 해석 방법은 결코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로써 제가 김성수 목사님이나 이근호 목사님보다 분명 지식과 이해가 부족할 지라도 
그분들의 사유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이 자명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김성수 목사가 오류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그가 바로 이런 교제가 없었기 때문이란 생각이듭니다. 
그가 방에서 홀로 사유하고 고민하고 혼자 싸우는 시간에 좀 더 다른 형제들과 고민을 나눴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생기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류 17. 
‘도’는 그것을 ‘상’짓는 순간 ‘도’가 아닌 것이 되며, 어떤 사물이라도 그것을 이름 짓는 순간 
그것은 그 사물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왜 별안간 이 진술을 소개 해드리냐 하면 이 사상이 김성수 목사의 신학에 얽혀있는 사상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소위 ‘무위’의 태도를 내세웠는데요, 이는 어떤 ‘상’도 짓지 않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비슷한 개념이 불교에도 있습니다. ‘가유’의 세계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 이를 ‘공’이라고 하는데요, 
불교에선 이 ‘공’을 ‘공’이라 이름짓는 것도 부정하기 위해 ‘공’마저도 ‘공’하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개념이냐 하면 
이 개념이 칼바르트의 신학에 있어서 그의 사상적 저변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류 18.
이근호 목사님이 ‘막 살아도 된다’라는 말을 하고 김성수 목사님이 그걸 좋게 받아들였냐 하면 
이근호 목사님이 보기엔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찾기 위해 무슨 행동을 하든 
그것은 다 하나님을 왜곡하고 오해하는 ‘구타유발자들’로만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무슨 교리를 믿든, 예배를 드리든, 헌금을 하든, 그것은 ‘자아’안에서 자기의 것으로 해석하여 
내 놓은 것이지 그리스도를 경유한 계시의 충돌에 의하여 생긴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계시를 받기 전에는 인간이 무얼 해도 허무한 것이 되므로 그냥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류 19.
그는 성경과 세상, 예수, 육체, 악, 죄 이런 것들을 율법 즉, 벗겨져야할 표면적인 것들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 새 몸, 선, 진리 이런 것은 표피적인 것에서 벗어나 얻어진 그 무엇들로 
보았지요. 역사적 예수는 단지 하나님의 뜻을 구현시키는 표피적인 모형이고 
그 예수를 죽여야 진리가 내안에서 발생되어 내가 진리가 될 수 있다는 진술입니다.
이 진술의 연관이 되는 사상은 노자나 칼바르트의 사상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지금 그의 진술이 하나의 사상을 구축하며 그러한 원리와 체계로서 
그 자신이 이성주의의 입장에 서 있음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오류 20.
성령의 상관없이 동원된 무분별한 사상의 전개, 옛 사람의 범주에서 마구 휘둘러댄 허무주의 사상들, 
과도한 원어해부(파자)로 무분별하게 해석하여 받아들인 개념들 등, 너무 많은 사람을 혼란케 하였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빛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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